[독일 취업] 베를린에서 비전공 개발자로 취업하기
개발을 시작하기 전부터 해외취업을 생각하고 있었고, 일을 시작한지 3년이 조금 넘은 지금 베를린으로 이주해 얼마전 채용 제안을 받았다. 유난히도 긴 행정절차에 종종 비자가 제 때 나오지 않아 채용이 취소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부디 나에게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장을 구했다는 안도와 그동안 내가 가졌던 불안이 어쩌면 독일 또는 해외취업을 앞둔 모두가 갖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직 탈락과 거절의 기억이 새록새록한 지금 후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 4개월간 200+개의 회사에 지원했고, 무수한 거절과 2개의 채용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아직 3곳의 회사와 채용 절차를 밟고 있다. 조금 아쉬움도 남지만, 우선은 곧 이 불안한 구직생활이 끝난다는 것에 감사하고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고 열심히해서 다음 이직을 더 잘 해보기로 했다.
1. 독일 입국, 구직 비자 신청
우선, 나는 한국이 아닌 베를린에서 구직을 할 생각으로 여행비자를 통해 독일에 입국. 현지에서 거주지를 등록하고 '구직비자(Job seeker visa)'를 받아 구직 활동을 했다. 한국에서도 오퍼를 받아오는 분들도 많아 무조건 독일에 들어와서 구직을 해야하는건 아니지만, 큰 규모의 회사가 아닌 이상 현지에 이미 들어와있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점 때문에 들어와서 구직하기로 했다. 타임 라인을 공유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르지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로 미루어보면 빠른 것도 아니고 아주 느린 것도 아닌 딱 중간 정도의 속도로 모든 상황이 처리 되었던 것 같다.
2월 15일 | 독일 입국 |
2월 15일 ~ 2월 23일 | 집 viewing 및 집 구하는 연락 돌리기 |
3월 7일 | 집 계약 |
3월 25일 | Anmeldung (거주지 등록) |
3월 29일 | 슈페어콘토(재정증명) 개설 및 현지 계좌 개설 |
4월 10일 | 외국인청 visa 신청 예약 |
4월 22일 | 외국인청 방문 - Job seeker visa 신청 완료 |
초반 정착에 어려웠던 것은 현지인들에게도 어렵기로 정평이 난 거주지 등록이 되는 집 구하기와 외국인청 취소표 티켓팅이었다.
2. 본격적으로 구직하기
2-1. 베를린 채용시장
독일도 베를린도 한 번 와 본적 없는 철저한 이방인의 입장에서 출국을 앞두고 가장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던 것은 '현지 채용시장 분위기'와 내 연차와 경력에 대한 '수요'였다. 직접 겪으면서 느낀 바로는 현지 채용시장에 대해서는 현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별로 원하는 대답을 얻기 어렵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내가 되면 호황이고 내가 잘 안되면 불황이기 때문에 정량적으로 현지 상황을 가늠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미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된 사람에게 '지금 독일 가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했을때 '아, 여기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여기도 요새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어찌보면 자명한 일이기도 하다.
- 현지 채용시장
체감 : 기회가 넘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점점 좋아지는 추세
나는 베를린 채용시장의 호황을 모른다. 코로나 직전부터 코로나 기간에는 개발 직군을 구하는 곳도 많고 많은 기회가 있었다고 들었고, (2024년기준) 작년에는 한 차례 큰 해고 바람이 불어 시장에는 현재 유능하고 비자까지 있는 인력이 넘쳐나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내가 지난 4개월동안 만났던 모든 HR담당자 또는 헤드헌터들이 실로 어려운 기간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보면 아주 쉬운 상황은 아닌듯 하다. 하지만 2월 중순에 비해 더 많은 포지션들이 올라오고 있고 5년차 이상 senior에만 국한되었던 채용공고도 점차 내려와 mid-senior, mid-level 등등 1~3년 정도의 경력 개발자들에게 전보다 많은 기회가 생겼다.
- 수요
체감: Java에 강점이 있다면 독일어를 구사하는 것이 좋고, 아니라면 React를 포함한 fullstack 경력이 필요해 보인다.
수요에 있어서는 독일어, 주사용언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한국 대기업 경험이 있어 독일 내 비슷한 플랫폼으로 이직하시는 분 또는 알고리즘 문제 풀이에 특화된 분들은 부럽게도 영어만 익숙해지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중소기업을 다녔고 코딩테스트는 버벅거리며 독일어는 전혀 할 줄 모른다. 배울 계획은 있지만 현 시점 내 처참한 독일어는 A1 언저리로 카페에서 음료나 조금 시키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취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베를린이 가진 멋진 장점이다. 적당한 영어와 몇년의 개발 경력이면 적당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온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약간의 경향성이라는게 존재하기는 한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이고 또 내 경력과 경험한 스택에 따른 편협한 시선이므로 누군가 글을 읽고 있다면 참고만 하시길. 참고로 본인은 Java, NodeJs, React(typescript) 경험이 있다. )
1. 독일어
독일어를 한다면 많은 일이 쉬워진다. 베를린이 tech 업계의 떠오르는 도시가 되면서 많은 외국인 개발자가 유입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앞다투어 모셔가기에 바빴겠으나 이미 외국인 개발자로 가득한 베를린. 이제 회사들은 조금씩 'B2 이상의 독일어 요함' 또는 'C1 구사 필수'등의 요강을 내건다. 특히 전통적이고 오래된 회사들의 경우 C1 구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에는 Junior를 구하는 공고들도 꽤 볼 수 있었다. 더불어기업 규모와 임금과 노동강도 면에서 여러모로 '아, 숲에 잘 숨어서 스트레스 덜 받고 업무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는 인상을 주었다. 실제로 유럽 다른 국가에서 일 하시는 분 말씀이 독일어 공부해서 현지 SI 기업 가는 것도 좋다고했으니 어쩌면 내가 느낀 인상이 영 잘못된 것만은 아닌듯 하다.
2. 개발
베를린이 개발자에게 기회의 도시가 된 여러 이유중 하나가 다양한 스타트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하는 기술 스택이 최신 프레임워크에 치중되어있다. 이런 회사들의 경우 junior 채용은 거의 없고 working student 또는 mid-level 그 이상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의 경력이 2년 이상이고 (5년 이상이라면 더할나위없음) 최신 스택을 사용해보았다면 써 볼 수 있는 회사의 선택지가 늘어난다. 또 역으로 조금 놀란건 은근 PHP 쓰는 회사들도 꽤 많아서 틈새 시장도 있는 것 같다.
2-2. 채용 프로세스
길다. 구직비자가 허락하는 6개월의 시간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을만큼 모든 프로세스가 내 예상보다 느리게 흘러갔다. 속전속결의 한국인에게는 이게 피말리는 시간이었다. 비자가 허락하는 날은 날마다 줄어가고, 공고 양은 기대보다 적고, 프로세스는 길게 이어진다. 한 번은 내 채용 담당자가 일주일 휴가를 가서 내 전형도 2주가 밀렸다. 분명 동료에게 인수인계 하고 간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지원도 누락되고 제대로된 피드백도 따로 없어서 아주 길게 이어졌다. 그런 회사에서 초장도 아니고 중반에 떨어진다? 그건 정말이지 가슴 아픈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겪어본 채용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HR Interview -> Manager Interview -> 코딩테스트 / 과제 -> Interview -> CEO Interview
* 코딩테스트/ 과제 이후에 진행되는 인터뷰에서는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특정 기술, 설계 관련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기업 규모에 따라서 전형이 더 길어지거나 짧아질 수 있고, 10인 미만 기업의 경우는 HR > CTO > 기술면접 으로 더 짧은 곳도 있었다. 이 면접이 가장 짧은 프로세스였는데 첫 지원이 3월20일이었고 HR 면접 제안이 5월 3일, 마지막 면접이 5월 17일이었던걸 보면 소규모 기업이래도 대기하고 있는 지원자도 많은데다가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좀 더 넉넉한 기간을 잡고 봐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 면접도 처음이라 초반에는 HR 면접에서 계속 떨어졌었는데 사람이 면접을 볼 수록 강해지고 나름 요령도 생겨서 조금씩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안되던 영어가 단기간에 늘 수는 없기 때문에 면접 질문에 익숙해지는것. 그리고 나만의 컨닝 페이퍼를 잘 만들어 두는게 관건인 것 같다. 이부분에 있어서는 따로 정리하는 것으로! 또 HR 면접에 있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 시장에 지원자가 많기는 한지 공고는 떠있지만, 모집이 조기 종료되는 경우가 더러있는 듯하다. 나와 파트너의 경력과 스택은 상당수 유사해 지원하는 회사가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HR 면접 제안을 받고 파트너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몇차례 있었다. 유일한 차이라고는 지원일자 밖에 없어서 그 뒤로는 공고를 최신순으로 두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3. 가끔은 기분전환도 필요하다
3-1. 테크 행사 / Meet up 참여하기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취업을 하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그럴수록 혼자 매몰되는걸 경계해야 하는데 내게는 기술관련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는게 기분전환 내지는 힘이 되어주었다.
- React Berlin : 한달에 한 번씩 있음. 다른 사람 프로젝트 구경 재밌음, 네트워킹
- WTM(Women Tech Maker) Berlin slack channel : 구직정보, 멘토링, 테크 행사 안내
이 밖에도 meet up 에 여러 모임들이 올라와있으니 한 번씩 바람 쐴겸 다녀오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실제로 행사장에서 알게된 사람한테 레퍼 비슷하게 도움을 받아서 거의 HR도 못 진행할 뻔한 회사와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낯선 영어 악센트와 나의 회화 연습에도 도움이 되니 아주 좋다.
3-2. 커피챗과 콜드메일
커피챗 말만 들었지 정말 누굴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못 해봤는데 베를린에 도착하고 첫 달은 너무 불안하고 막막해서 링크드인으로 cold mail을 주구장창 날렸다. 처음에는 보내면서도 너무 부끄럽고 민망했는데 처음이 어렵지 계속 쓰다보니까 나도 스팸 메일 보고 아무 생각 안드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내 메일을 적당히 스팸 취급하겠지 싶은 생각이 들어 더 뻔뻔하게 메일을 보냈다. 주로 지원해볼까 싶은 회사의 매니저급이나 CTO, 또는 이력서 참고를 위한 내 연차 + 비슷한 경력의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그리고 한 차례의 커피챗과 두 차례의 채용 프로세스로 이어졌다. 채용 프로세스에 몸을 실을 수 있어 기뻤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채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분명 좋은 경험이었다. 아쉬운 소리 하는게 싫어서 서점에서도 직원한테 책 위치를 못 물어보는 사람인데 메세지를 보내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분명 조금씩 발전해 가고 있는건 분명했다.
4. 합격과 끝나지 않는 예약
예약과 예약의 나라 독일. 블루카드는 오프라인 예약 없이 온라인으로 서류를 모두 제출하면 예약일자를 지정해서 안내해준다. 구직비자 신청할 때 2달 내내 빈 슬롯 하나 없이 매일 취소표 없나 들락날락 했던걸 생각하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지만, 이렇게 서류 넣어 놓고 기다리는데 감감 무소식이였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너무나 많다.
나는 7월1일 출근으로 6월 10일에 계약서를 받았고, 노동 허가가 나오면 서명을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온라인에 떠도는 흉흉한 말들에 괜히 또 마음이 어수선해지는게 아닌가. 일단 서류는 넣었고 마침 또 망가진 사이트가 복구되면 다시 취소표 티켓팅에 뛰어들어볼 요량이다.
사람 마음이 취업 전에는 어디든 불러만 주었음 싶고, 오퍼를 받으면 더 좋은 옵션은 없을까 이제 정녕 최선일까 싶은 마음이 든다. 당장 면접만 걱정이다가 통과하고 나면 앞으로의 나날이 큰 산처럼 다가오는데 나 역시 그렇다. 채용 과정보다도 앞으로 펼쳐질 실제 업무와의 나날이 더 큰 도전이자 스트레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솔직히 너무나 두렵고 두렵지만 다 잘 될 것이고 나는 끝내 잘 해낼것이라는 자기 암시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 보기로 한다.